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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링 마이 라이프

[시리즈 연재] 직장생활은 이해보다는 인정이 편하다.

by 여아나 2021.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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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링 마이 라이프]

 

2. 이해하려 하지 말고, 인정하라

 

스물여섯이라는 다소 ‘나이 많은’ 막내생활이 그리 쉽지 않았다.

워낙 솔직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사회생활은 쉽지 않았다.

방송국 안의 아나운서들이라고 하면 단정하고 단아한 모습을 떠올리겠지만 여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부서는 그야말로 야생이다(생각보다 우리는 모두 잘 지냈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야생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gerandeklerk, 출처 Unsplash

 

 

 

 

회사를 다니며 2년 동안은 뛰쳐나가고픈 충동을 시시때때로 느꼈다(실제로 뛰쳐나간 적도 있다).

도대체 왜 자기 잇속만 챙기려 드는지, 본인이 하기 싫은 것은 상대도 싫다는 것은 왜 모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회사이다 보니 상하관계가 있지만 우리 모두 귀한 집 아들, 딸들이 아닌가.

그러나 나도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한 해, 한 해 접어들며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마음먹었다. 20년 넘게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 9시간, 길게는 하루의 반 이상을 함께 지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생길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잘 ‘해결’하고 ‘극복’해 내느냐이다. 최고의 사랑의 독고진처럼 “극복” 이라고 외치면 다 극복되는 것이 아니니 이 안에서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

 

그러나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중에서도 직장에서 직급이 있는 가운데의 이해는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그것을 ‘남용’하는 자 때문에.

“휴가 대체 짜봤는데 이렇게 됐어.”

“이렇게 되면 너무 몰려서 일이 힘들어지는데요?”

“그래도 해야지.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하니까.”

희생을 운운하는 그녀는 절대 본인은 희생하려 하지 않았다.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가장 적은 방송시간에 가장 적게 대체 방송에 본인의 이름을 올렸고 그 무게를 모두 다른 모든 후배들에게 전가시켰다. 이러한 행동은 한두 번이 아니었고 ‘윗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한 우리들에 대한 공격’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이런 이기적인 행동패턴을 보이는 사람에게 ‘변화’를 바라는 건 나만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그 대상이 직장 상사라면 그것은 더더욱.

상식적이지 않았던 그녀는 자신의 말과 행동의 잘못을 전혀 알지 못한 채(아니면 모른 척 하고 싶었거나) 꾸준히 변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변한 것은 그녀를 제외한 다른 이들이었다. 초반 스트레스를 받으며 힘들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에 이러한 존재도 있음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그 후 ‘무시’의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결국 우리는 ‘해탈’의 경지에 오르게 되어 그녀를 측은하게 느끼게 되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을 자꾸 이해하려 들면 ‘도대체 왜?’라는 생각에 더 화가 난다. 그냥 ‘세상의 여러 부류의 사람 중에 하나’로 인정하고 무엇을 어떻게 하든 무시하기 시작하니 마음이 편해지고 그녀의 얼굴을 봐도 인상이 써지지는 않았다. 그녀의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들은 그 후에도 꾸준히 이어졌지만 예전처럼 우리는 분노하지 않았다.

 

 

© Alexas_Fotos, 출처 Pixabay

 

세상 모든 일을 나의 기준과 나의 잣대로 보면 어긋난 것이 눈에 너무나 잘 보인다. 그러나 그 잣대를 좀 더 넓게 높이 넓이를 넓혀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 선배는 이렇게 조언해주었다.

“그 사람을 그 상황을 대면해서 맞서려 하지 말고 한 발 물러나서 생각을 해. 그리고 바꾸려 들지 말고 놓아줘. 네가 붙잡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달라지지는 않아. 붙잡을수록 아마 더 안 변하려 들걸.”

그러나 나는 쓸데없는 인내심으로 그녀를 인간적으로 이해해보고자 했다. 그렇게 더 지쳐갔고 다행히도 얼마 후 포기했다. 이해하려 애쓰지 않고 인정해버리니 상식으로 계산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별별 이상한 사람 다 있네.’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상상해보라. 모든 세상 사람이 다 똑같다면 그게 더 무섭다.

 

 

© sigmund, 출처 Unsplash

세상은 퍼즐 같은 곳이다. 서로 다른 모양의 퍼즐이 모여 맞는 쪽을 끼워가며 공동체를 만든다. 퍼즐이 서로 맞지 않는다고 해서 한 귀퉁이를 잘라낼 필요도 없고 안 맞는 퍼즐을 억지로 끼워 맞출 필요도 없다. 맞지 않으면 왼쪽으로 돌려보고 뒤집어서도 해보고 그래도 되지 않는다면 ‘아, 이런 퍼즐도 있구나.’ 하고 다르다고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억지로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내 마음을 도려내고 상처받을 필요는 전혀 없다. 그것은 내 에너지만 낭비될 감정 사치다.

 

“여전히 그래. 점점 더하는 거 같기도 하고. 정말 특이한 사람이야. 신기할 정도로.”

애석하게도 그녀는 여전히 그녀의 캐릭터를 잃지 않았다. 신기할 정도로.

 

 

 

 

“뇌가 없는데 어떻게 말을 하죠?”

“나도 몰라. 하지만 사람들도 생각 없이 말을 하잖아.”

-영화 <오즈의 마법사> 중에서

 

 

 

 

© geralt, 출처 Pixabay

 

왜 라는 질문을 하는 건

그나마 애정이 있을 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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