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타일링 마이 라이프

[시리즈 연재] 연애, 갑이 되시겠습니까. 을이 되시겠습니까.

by 여아나 2021. 9. 30.
728x90
반응형

 

3. 갑이 되시겠습니까, 을이 되시겠습니까

 

© tylernixcreative, 출처 Unsplash

 

“도대체 지금까지 몇 명 사귄 거야? 솔직히?”

 

“사실 난 많이 사귀지는 않았어. 끊이지가 않았을 뿐이지. 내게 대시해오고 날 좋다는 사람이 많았지. 그건 인정. 그러나 사귄 사람은 10명?”

 

“거짓말….”

 

“뭐, 잠깐 만났다 하는 정도까지 더하면 15명 정도로 해둘게.”

 

늘 자신의 연애에 있어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그녀를 오랜 시간 지켜 본 결과 그녀는 그녀만의 룰이 있었다. 그리고 그 룰 안에서 남자들은 백이면 백, 그녀에게 ‘꼼짝 마라’였다.

 

서른이 다 되어가도록 제대로 연애를 해보지 못한 사람도 있고, 연애를 할 때 늘 그에게 질질 끌려 다니다가 결국 상처만 받고 마음에 반창고 수십 개 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연애는 대체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내 천성 때문일 수도 있어. 게으르다 보니까 연락을 잘 안 하게 되고 그게 처음부터 그랬으니까. 그런데 가끔은 일부러 참은 적도 있지. 그게 백이면 백 통했으니까.”

 

그녀는 연락을 잘 하지 않는다. 그에게 오는 연락도 때론 받지 않는다.

 

“넌 내가 먼저 연락하기 전까지는 죽어도 연락 안 하더라.”

 

심지어 그녀가 먼저 좋아하기 시작한 그에게도 그녀는 ‘밀당’ 하는 고차원이다. 보통의 여자라면 먼저 좋아하기 시작한 그에게 연락이 오지 않으면 전전긍긍하다가 연락을 하기 마련이지만 그녀는 그런 순간에서 조차 연락을 하지 않는다.

 

“남자는 자기가 좋으면 들이대. 엄청.”

 

나이가 들수록 남녀 모두 해 볼만큼 해본 연애에 약아 질대로 약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남자는 스스로 을이 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자는 을이 되면 안 돼. 무조건 갑이 돼야지.”

 

그녀는 ‘갑이 되라’는 말을 반복한다. 남자들은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스스로 을이 되는 것을 자청한다. 앞뒤 가리지 않고 연락을 해오며, 모든 것을 맞춰준다. 처음에는 그렇게 그 여자만을 바라볼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을로 시작한 남자가 갑이 되고 그렇게 자연스레 갑이었던 여자가 을이 되면 그 위치를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워지고 을이 된 여자는 그 때부터 힘든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

갑이 된다는 것은 ‘내 패를 상대에게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아니, 좋아하는데 그걸 표현 못하면 얼마나 답답하겠어?”

 

“그래서 결국 얻는 게 뭔데? 너의 목적은 네가 그렇게 네 마음을 보여주면 그 쪽도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사랑이 더 커지는 거 아냐? 그런데 슬프게도 그게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거야. 생각해 봐. 처음에는 좋을 수도 있지.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다니까.”

 

“무슨 말이야? 뭐가 그렇지 않다는 거야.”

 

“너 생각해봐. 그때 J양 좋다고 그렇게 난리치던 그 오빠. J가 잘해주기 시작하고 그렇게 챙겨주고 좋다니까. 어떻게 변했어? 그렇다니까. J는 참았어야 해. 참는 만큼 얻는 게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참는 만큼 얻는 것’ 그 얻는 것은 바로 더 큰 그 남자의 ‘마음’이었다. 좀 더 타이트한 관계를 위해서는 조금 더 참고 ‘갑’의 키를 쥐고 있어야 그 관계가 지속되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는 것이다.

 

“참는 만큼 얻는 게 다른 게 아니야. 그걸 못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잡은 물고기에 밥을 주지 않는 것은 불변이니 참아야 해.”

 

“넌 처음부터 이랬어?”

 

그녀는 20대 이후로 줄곧 늘 계산적이었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 계산은 마음의 계산. 내가 상대방에게 마음을 다 열어주지 않으면 그만큼 상대방은 내 마음을 더 열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난 디펜스형 인간이라서 그럴지도 몰라. 내가 상처받는 것이 싫었지. 그리고 만약 확률이 좀 떨어져 보이는 상대는 시도하지 않았어. 고백을 하게 된 후에 오게 될 그 후폭풍. 윽, 생각만 해도 싫었거든.”

 

나는 겁쟁이라 그럴지도 모른다는 그녀에게 의외의 약한 모습을 발견했다. 그러나 차라리 겁쟁이로 상처받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이 들 때는 바보같이 흔들리는 J양을 볼 때다.

 

“그러니까 그만하라고. 세상에 남자가 걔 하나니?”

 

“세상에 남자는 많지만 그는 하나야.”

 

또 시작됐다. 이럴 때는 누가 그의 DNA를 그대로 복제해 하나 더 만들어서 우리 J양 그만 슬프게 좀 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누가 봐도 그는 이미 식을 대로 식었는데 그녀는 식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냐며 자기가 질릴 때까지만 좋아하겠단다.

 

“내가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이 다시 나를 예전처럼 죽고 못 살게 좋아할까?”

“연락하지 마.”

“그러다가 영영 끝나버리면?”

“……”

 

후의 결과는 누구도 모른다. 그녀의 말처럼 연락이 끊어진 J에게 다시 그가 돌아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잘됐다 싶어 하며 그는 다른 여자를 만나 잘 먹고 잘살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사랑이라면 하루라도 더 빨리 끊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남자나 여자나 똑같아. 연애를 하는 중이든 시작하기 전이든. 지금 J 네가 그 오빠가 마음을 안 열어주니까 더 좋아죽겠고 미치겠지? 그도 처음에 딱 그 심정이었을 거라고. 그리고 그건 대부분의 남녀가 그런 거고.”

 

열리지 않았던 J양의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한 그의 열정적이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행복한 고민에 빠졌던 J양의 표정도.

그때도 그녀는 이렇게 말을 했다.

 

“지금 네 패를 다 보여주면 안 돼.”

역시 연애의 달인, 그녀.

 

“난 뜨거운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거 같아. 늘 덜 사랑했으니까. 그래서 갈증은 있어. 계산하지 않고 상대를 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순수해보이기도 하고…. 그런데 중요한 건 갈증은 있지만 굳이 그 갈증을 해소하고 싶을 만큼 그들이 부럽지는 않아.”

 

너무 좋아 미치겠고 연락하고 싶어 미치겠고 남녀사이에는 미치겠는 일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그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해서 내 마음을 유리창처럼 보여주는 이들도 있고 유리를 열심히 닦아줘야 겨우 그 마음을 조금 볼 수 있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그녀는 말한다.

“그런 미치겠는 사랑을 못해본 거 같아서 가끔 그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지금이 더 좋아.”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라며 독립투사 스타일로 연애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 적군의 기지에 들어가 깃발을 뽑아 자랑스럽게 깃발을 흔든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는 내 영역이 아닌 그의 영역 안에 깊숙이 들어가 있다. 스스로 을이 되기를 작정하며 그의 영역으로 들어간 것이다. 처음 밟아보는 그 땅은 내게 어색하기만 하다. ‘내가 무얼 어떻게 해야 여기서 더 잘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계속 여기 머물고 싶다’고 갈망한다. 마침내 ‘그의 영역을 다 내 땅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갑 되기 작전’도 펼치지만 애석하게도 그 작전은 대부분 실패한다. 때문에 우리는 처음부터 쟁취를 위한 ‘갑’인 상태로 적군으로 들어서야 한다.

 

 

© k_yasser, 출처 Unsplash

 

을이 되어버린 여자는 갑이 되기 어렵다.

갑의 사랑을 하자.

참는 만큼 얻는 것은 다름 아닌 그의 마음이다.

덜 상처받고 더 사랑받자.

 

누가 갑이든 누가 을이든

어쨌든 우리는 사랑을 하고

이렇게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사랑하고 있어.

우리는 늘 함께.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