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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링 마이 라이프

[스타일링 마이라이프-시리즈]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뀐다는 건

by 여아나 2021.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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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뀐다는 건

 

 

1에서 9까지 아홉 개의 숫자와 0을 써서 10이 될 때마다 한 자리씩 올라가는 것을 생각해 낸 일은 인류 역사상 아주 훌륭한 발명임에도 서른이 된 우리들에게는 그 발명이 원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숫자는 대체 왜 이렇게 만든 거래? 9가 끝이 아니라 숫자를 좀 더 연장해줬으면 나 지금 스물 ‘땡’ 살인 거잖아. 왜 9 다음을 못 만든 거냐고. 왜? 왜!!!”

 

스물아홉 번째 생일에는 열 살을 알리는 긴 초 두 개와 한 살짜리 초 아홉 개로 총 열한 개가 필요하다. 그리고 서른 번째 생일에는 긴 초 세 개만 있으면 된다. 열한 개의 초가 가득 꽂혀있을 때는 케이크에 난 열 한 개 구멍 때문에 케이크 모양이 볼품없어졌다고 싫어했는데, 1년이 지난 후에는 그 모습이 그리도 그리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난 스물아홉보다는 서른이 더 좋다.

 

 

 

© anniespratt, 출처 Unsplash

 

내게는 서른보다 스물아홉이 더 어려웠다. 시험을 앞두고 전날 공부를 하지 않은 것처럼 스물아홉은 매우 불안했다. 초초하고 ‘뭔가’를 하지 않음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원망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20대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스물아홉 살은 매우 아쉬웠고 왠지 모르게 쓸쓸했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들을 만나면 20대를 돌아보는 일이 많았다.

 

“20대 때 넌 뭘 제일 잘했던 거 같아?”

“대학 잘 졸업하고, 자격증도 세 개 따고, 덕분에 취업도 잘 했고….”

“그거 말고 네가 만약 네 자서전을 쓴다면 나의 20대의 역사라고 할 만한 거 뭐가 있니?”

“역사…. 내 연애 역사가 좀 찬란하긴 했지. 버라이어티한 연애사를 묶어서 ‘나의 연애기’를 내도 될 만큼?”

“그 책 꼭 사 보마. 그 남자들이 얼마나 잔혹하게 너에게 당했는지 봐야지.”

 

우스갯소리로 넘어간 이 이야기는 친구를 혼란으로 빠뜨리게 만들었다. 얼마 뒤, 친구는 우울해 하며 이야기했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네가 말한 그 역사 어쩌고 말이야. 나 연애도 잘하고, 지금 번듯한 직장도 다니고 있는데 어제 자려고 누워서 생각해 보니까 갑자기 뭐랄까. 지난 9년 동안 한 게 없는 거 같아. 남들이 하는 것처럼 나도 대학 들어가고 필요한 점수, 자격증 따고, 취업하고…. 좀 더 특출한 게 있다면 연애인데, 그건 뭔가 부족해. 나 뭐 하고 20대를 보낸 거지?”

 

사실 나도 그때 ‘나는 과연 20대에 무엇을 한 것일까?’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에게 ‘20대에 가장 잘한 게 무엇’인지 물었던 것이다.

20대 끝자락에 다다르면 나는 과연 20대에 무엇을 했으며, 내 20대 인생은 과연 무엇을 남길 수 있는 것인지, 이대로 30대로 들어서도 되는 것인지, 30대라는 새로운 세계를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인지 고민하게 된다.

 

 

© bielmorro, 출처 Unsplash

 

 

고민을 하고 서른으로 넘어가지 않으려 발버둥을 쳐도 결국 서른이 되지만 마음이 20대에 머물러 있다면 ‘서른앓이’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나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벌써 서른이래. 나 슬퍼. 어쩌지? 나 이제 어떻게 살지?”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자책하며 10년의 역사를 통째로 비하하기 시작하는 것이 1단계.

 

“솔직히 나 최선을 다하진 않았어. 그래 솔직히 말해볼게. 술 좀 덜 마시고,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연봉 많이 주는 회사 갈 수 있었을 거야. 20대 꽃다운 내 나이에 열심히 먹기만 한 것도 잘못이지. 운동 좀 할 걸. 넌 옆에서 나 먹을 때 왜 안 말렸어?”

내가 무엇을 잘못했던 것일까. 무엇이 부족했나. 나의 단점을 어떻게든 찾아내서 자기반성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 2단계.

 

그리고 그다음에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포기하거나 또 다시 결심하거나.

“됐어. 나 이대로 살래. 30년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나 사실 별 문제없었어. 돈은 이 정도 벌어도 밥 먹고 살아. 살 좀 찌면 어때. 지금 이대로 내 모습을 사랑해 주는 낭군을 만나 난 백년해로 할 거야.”

“앞으로 내게 절대 과식이란 없어. 그리고 나 공부하려고. 요즘 뇌가 좀 굳은 거 같기는 한데, 앞으로 새벽반 영어 회화 클래스 듣기로 했어. 글로벌 인재로 발돋움할 테야!”

 

둘 다 결론은 그리 나쁘지 않다. 전자는 매우 긍정적인 성격이라 그 나름의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고, 후자는 이렇게 또 계획을 세워 노력하다 비록 실패할지언정 뭔가 했다는 뿌듯함에 스스로 만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3단계까지 가는 게 쉽지 않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3단계는 언젠가 찾아온다. 조금 늦더라도 우리는 우리 나름의 행복을 찾기 위해 3단계로 들어서게 된다.

 

서른은 끝이 아니다. 지금까지 늘 비슷한 일상에서 나를 되돌아볼 기회가 없었던 사람에게는 다시 한 번 내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의 시작이고, 숨 가쁘게 20대를 달려온 이들에게는 한 번쯤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쉼의 시작이다.

 

 

스물아홉의 끝에서 서른으로 넘어오는 것이 쓰라린 사람에게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치유의 시작이 될 것이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채 물 흐르듯 서른으로 넘어온 이들에게는 새로운 물을 만났음을 깨닫게 해주는 깨달음의 시작이 될 것이다.

서른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서른이 될 자격이 충분히 있으며 그 자격이 없다고 하더라도 서른의 나이를 강제로 박탈하지도 않는다. 내가 아직 서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곧 적응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시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아직 마음이 20대에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조급해하지 말라.

이제 곧 당신의 순서가 온다는 의미니까.

 

 

 

 

© ThoughtCatalog, 출처 Pixabay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던 그 곳.

그 곳에서 나는 스물 아홉도 서른도 아니었다.

현재로 돌아온 지금의 나는 다시, 서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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